훈련소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꼽자면 나는 아마도 아침 기상나팔 소리를 듣는 순간이 아닐까. "저벅 저벅"하는 소리로 시작되는, 그래서 "저벅가"로 통용되던 기상방송은 한참은 더 자야만 할 것 같던 우리를 깨우고 고단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그래서인지 불침번 근무를 서야하는 순서가 다가오면 여간 신경이 쓰였던 것이 아니다. 수면시간이 한 두 시간 줄어듬으로써 쌓이는 육체적인 피로도 그 이유였겠지만, 마땅히 쉬어야 할 시간에 쉬지 못한다는 것이 주는 정서적인 스트레스도 컸다.
불침번 근무는 2주에 한번 꼴로 돌아왔다. 이것도 훈련의 일부이겠거니 생각하며 처음 몇 번은 기계적으로 근무를 섰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 조금 더 몸이 무겁고, 학과 시간에 유독 졸음이 쏟아져서 기합도 많이 받게 되기도 하였지만 그런 순간들도 훈련생활에 있어서는 늘상있는 일상과도 같지 않았던가. 자다가 한밤에 깨어 군복으로 갈아입고 정해진 위치에서 한 시간 불침번 근무를 서는 것, 시계를 수십번 쳐다보며 정해진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것, 마침내 근무시간이 끝나고 침대로 돌아와 밀린 잠을 청하는 것 마저도 반복적인 일상이 되면 습관처럼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날따라 불침번 근무를 서면서 이런저런 생각, 고향 생각, 가족 생각, 친구들 생각 등을 하다가 같은 시간 곤히 자고 있는 동기 훈련생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그들의 잠은 얼마나 달콤한가, 깨어서 졸음을 쫓고 있는 불침번 근무자들에 비한다면... 그런데 그 역(逆)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자 불침번 근무가 가지는 숭고한 의미를 새삼 깨닿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편히 잠들었던 수많은 밤들을 지켜주었던 이들은 누구인가. 나는 여태껏 그들에 대해 어떤 고마움은 커녕, 그것을 인식하고 있기나 했었던가. 나의 잠깐의 수고로움을 통해 많은 동료들이 편한 잠을 잘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나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수많은 드러나지 않는 불침번 근무자들에게 정당한 명예와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의와 도덕성을 회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국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2007년에, 대다수의 소방관들은 주말도 휴일도 없이 24시간 맞교대라는 살인적인 근무형태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현직 소방관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되었다. 주 50시간 근무제도라는 규정이 무색하게, 주 100시간 근무를 수행하는 소방관들도 허다했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이들이 이러한 근무환경 속에서 일하도록 방치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 그해 국정감사에서는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에 대하여 집중적인 질의가 이루어졌고,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 5년간 8,000여명의 소방관이 신규채용되고, 24시간 맞교대 근무는 3교대 근무로 상당부분 개선이 되었다.
밤 늦게 편의점에 들러도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고, 주말에 영화관에서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식당에 들러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상당히 편리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편리함 이면에 놓여져있는 심야근무자, 주말근무자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정의와 우정이 살아있는 정치공동체의 시민이 지니고 있을 바로 그러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공동체의 나머지 시민들을 위해 오늘 밤과 낮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드는 시민적 덕성(civic virtue)이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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