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31일 목요일

[인태영 칼럼] '현격한 격차' 앞에서 우리 정치를 돌이켜본다.

 
‎5월 마지막 주간에 남녘의 섬에 있는 동지이자, 후배를 만나고 왔다. 지난 총선 과정에서 입은 상처를 안고, 그곳으로 떠난 지 보름이 되어서다. 그는 노동을 하고 있었다. 의연한 모습을 모여주려는 그가 고마웠다. 그러나 태양에 그을리고, 용접에 익어버린 몰골, 그리고 아물지 못하는 상처를 보았다.

그는 20여년 마름 생활을 하면서 지역 기반을 다졌었다.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구태정치인을 대신하겠다는 명분도 내걸었다. 그리고 집을 팔아 전세로 옮겨 자금을 마련하고, 예비후보로 등록하고, 출판기념회로 주변 친지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무엇보다도, 그는‘모바일 국민경선’으로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드리겠다’는 지도부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호기롭게 일을 벌인 것이다. 그의 캠프는 성황을 이뤘다. 경선 승리를 자신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경선은 사라졌고, 그곳에는 인근 다른 지역구 후보가 자리를 옮겨 공천을 받았다. 권력관계에 의한 나눠먹기로 귀결된 것이다. 변변한 ‘줄’ 없던 그는 결국 밀려났고, 그는 그렇게 상처를 입었다. 어디 그 뿐이랴! 많은 사람들이 믿었던 동지들에게 '공천 범죄', '사기극'을 당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숫한 지지자들이 힘없음을 자책하며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동지들을 벼랑으로 내 몰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던 중앙당 지도부, 동지들에 대하여 ‘현격한 격차’라며 들이대는 ‘최소한의 예의도 없음’과 ‘여론조작’, ‘무한책임을 지겠다’며 줄행랑친 그들을 지켜보았다.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이라면, 줄 잘서는 사람, 돈 많은 사람, TV 궁중사극의 암투질에나 능한 사람들이 아니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살벌한 ‘죽음의 굿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수 십 년이 지나도 ‘그 나물에 그 밥’인 사람들이 끼리끼리 나눠먹기에 몰두하다가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파리의 머리’와 ‘달팽이의 뿔’을 차지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그렇게 19대 국회가 허다한 ‘원죄’를 가지고 출범한다. 관계자들은 그 ‘죄의식’만이라도 가져주기를 바란다. 그래서 좀 겸손해 지기를 바란다. 사람을 무시하고, 옆의 동지가 죽어나가도 저만 살자는 수준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정당이, 정치가 사람을 보살피고, 살리고, 키우는 ‘살림 판’이 되기를 바란다. 나도 남녘의 그 친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작은 준비라도 해야겠다.

[서현수 칼럼] "최장집 칼럼"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1)

선재네 핀란드 이야기: [최장집 칼럼]과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1)   

1.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최고의 동료로 만나 지금은 10년의 나이 터울에도 불구하고 가장 절친한 친구이자 형제처럼 지내는 백선익 선생님. 어쩌다 나는 지금 핀란드에서, 백 선생님은 필리핀에서 각각 떨어져 유학하는 처지가 되었다. 곧 필리핀국립대학 아시아학 석사과정 입학을 앞두고 있는 선생님과 종종 통화하는 것이 내게는 큰 위로와 용기가 된다. 그런데 지난 4월 초순 경 어느 날 아침에 백 선생님과 인터넷 전화로 통화하다가 이구동성으로 소리치며 동의한 일이 하나 있다. 바로 <경향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최장집 칼럼]이 정말 훌륭하다는 것!
 
그 때 우리는 총선을 앞둔 한국의 정치적 풍경(특히야구의 무사만루 찬스에서 병살타를 친 뒤 투아웃 상태의 위기에 빠진 모습에 비유되던 민주당 한명숙호의 무기력과 이른바 김용민 막말 파문 논쟁)에 대해 우울한 소회를 나누고 있었는데,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백 선생님이 그래도 요즘 최장집 선생 칼럼이 참 좋데.”하고 운을 떼는 것이었다. 나도 재빨리 그 말을 받아, “, 그렇지요! 그렇지 않아도 최근 최장집 선생 칼럼을 읽고 너무 좋아 그 동안 연재된 칼럼을 한 달음에 모두 읽었어요!”라고 목청을 높였다.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아내가 저 두 사람 또 의기투합 하는구나’, 그런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계속 소리를 높이며 최장집 선생 글의 미덕을 부르짖었다.
 
그 뒤에도 지금까지 격주 정도에 한 번 꼴로 연재되는 이 칼럼을 나는 모두 열독했다. 내가 보기에 최장집 선생의 이번 칼럼 연재는 근래 우리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여러 측면의 성취와 모멘텀을 제공한다선생의 칼럼을 읽으며 갖게 된 여러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2.
우선, 선생의 칼럼들은 그 자체로 뛰어난 정치평론이자 사회비평이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제도화된 정당 정치의 성숙과 이를 뒷받침하는 이론적 연구에 오랜 동안 천착해왔던 정치학자이다. 이러한 그의 이론적, 실천적 지향은 칼럼의 선명한 지향성으로 일관되게 드러난다. 그러나 그는 이 작업을 추상적인 이론적 명제와 주장으로 전개하는 대신, 우리 사회의 가장 실질적인 문제이면서도 정치적 공공 영역에서 거의 대표되지 않는 이슈들을 통해 아주 구체성있게 풀어간다.
 
장위동 봉제공장의 얼굴없는 생산자들로부터 시작해, “‘노동없는 민주주의의 감춰진 상처”, “현대차와 민주적 노사관계”, “다시, 변화의 중심에 선 젊은 세대”, “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복지를 생각하다”, “공덕동 재래시장에서”, “농업·농민을 다시 생각한다”, “‘청년 유니온한국 노동운동의 희망”, “외국인 노동자, 합법과 불법 사이에서”, 그리고 최근의 누가 신용불량자를 만드나누가 신용불량자를 방치하나에 이르기까지, 제목만 일별해보아도 그의 관심이 향하고 있는 장소가 어딘지 생생히 전달된다.
 
더욱이, 이 칼럼들을 그는 책상에서 쓰지 않고 현장을 발로 누비며 썼다. 칼럼이라기보다 심층 르포에 가까운 한 편 한 편의 글에는 현장에서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육성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어느덧 정년을 지나 칠순이 다 된 원로 정치학자가 전국의 현장을 누비며 우리 사회의 감추어진, 그러나 정말 실제적인 문제들을 면밀히 취재하고,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사회적 시민권을 얻지 못한 우리 시대의 민중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그려내는 이 수고로운 작업 앞에서 나는 깜짝 놀랐고,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칼럼들은 비단 뛰어난 정치평론의 수준에만 머물지 않는다. 매 편의 글이 사안의 정곡을 찌르면서, 특히 민주화된 정부-의회와 정당과 정치인들이 실제로 무엇을 해야 하며, 지금껏 무엇을 하지 않고 있는가를 정확히 지적한다. 좋은 정치평론은, 그러므로, 좋은 정치적 행위(political act)와 실천(praxis)의 차원으로 연결된다. 그의 글들은 현재 한국의 민주적 의사결정 제도와 그 중심 행위자들이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걸고 치열하게 수행해야 할 기본적 임무와 역할을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그리고 이는 10년의 집권 경험을 지니고 있으면서 현재 야권을 대표하는 민주당을 비켜가지 않으며, 나아가 진보를 표방하는 정치 세력에 대한 냉철한 비판과 반성의 촉구로 이어진다.


(계속)

2012년 5월 25일 금요일

[MH칼럼] 정치평론과 이데올로기


   대학원 시절에 서평을 한 편 청탁 받은 적이 있었다. 국내 주요일간지 논설위원이 그간의 칼럼들을 모아서 출판한 <칼럼집>에 대한 서평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서평을 부탁한 이는 아마도 그 책에 대한 우호적인 서평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패기 넘치던 시절이었고, 정치평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넘치던 대학원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나였기에, 겁도 없이 냉정하게 그 <칼럼집>을 비평하였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나의 젊었던 심사를 비집고 들어왔던 불만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정치세계에서 이념을 배제시키고자 하였던 일종의 비()정치적 태도였으며, 또한 이념을 극복하자고 제안하면서도 스스로의 이념적 편향은 온전히 남겨두는 솔직하지 못한 태도 때문이었다.

   정치평론가들은 중립적인 관점을 지향한다.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야구해설가가 프로야구 중계를 하면서 특정 팀에 특별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많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살 것이 분명하다. “응원은 우리가 한다. 해설가는 해설이나 똑바로 하라.”라고 반응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응원단>이나 <지지자>가 아니라 <정치평론가>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특정한 정치적 가치(예컨대 분배적 평등이나 경제의 양적 성장)나 특정 정책에 대한 개인적 선호를 내세우기보다는 공동체를 아우르는 보다 전체적인 관점에 설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게 될 것이다.

   공론과 의사소통의 공간에서 이념논쟁이 과잉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이념에 갇히면 정작 중요한 삶의 문제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념은 현실의 문제를 선/악 구도로 만듦으로써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확산시킨다. 한국정치의 장에서 대부분의 논쟁들은 이념논쟁 혹은 선악구도로 재편된다. 최근의 방송법 개정안 논란은 이내 방송악법혹은 “MB악법으로 기호화된다. 그 순간부터는 묘사한 쪽도, 묘사된 쪽도 타협의 여지는 없어진다. 공론의 장은 협소해지며, 정치과정은 싸움의 난장판이 된다. 최장집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비결정(non-decision)의 결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삶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회경제적 이슈들이 공론장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반면에, 정치쟁점이나 이념논란은 과잉된 구조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장의 구조는 민주주의의 질적인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정치세계에서 이념을 완전히 소거시켜야 바람직한가의 문제도 검토해보아야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츠 셔먼의 정의에 따르면, 이념은 세계관과 일관된 행동지침을 동반하는 체계적 사고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서 이러한 이념 또는 신념체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신념체계들로부터 나온 개인들의 의견이 정치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정치평론가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내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의견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데 있다. 왜냐하면 정치평론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임무는 대중들에게 좋은 의견을 제공해주는데 있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좋은 의견을 만들어나가도록도와주는데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것은 민주적 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적 의견을 숙고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기본요건를 전제로 성립된다. 나의 투표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듯이, 나의 정치적 판단을 다른 누구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

   정치적으로 현명하게 생각하기(thinking politically)란 무엇일까? 두 극단의 지점 사이에서 부단히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도 역시 그러한 지점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념의 과잉도, 이념의 완전한 배제도 정치세계에 대한 우리의 참된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두 극단을 아우르는 관점을 우리는 공공성(公共性)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공성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노력을 우리는 덕성(virtue)라고 한다. 정치평론은 시민들의 정치적 덕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히 그 소명을 가진다. 

2012년 5월 23일 수요일

[BK칼럼] 두 명의 노무현

(노무현 대통령 3주기 헌정 칼럼)

중앙일보 기자 박신홍의 책 "안희정과 이광재"는 사실 노무현에 대한 이야기다. 안희정과 이광재라는 대조적인 두 참모의 정치 역정을 풀어내고 있지만 그 중심에는 노무현이 있었다.
안희정은 전형적인 386 투사이자 진정성의 화신이었다. 항상 원칙과 사람을 중시했고 자기 희생도 기꺼이 감수했다. 그 결과 노무현 임기 중 그 흔한 감투 한번 써보지 못하고, 감옥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공천도 탈락했다.

이광재는 '사업의 귀재'였다. 한때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을 보좌했을 정도로 진영에 얽매이기 보다 '실용'을 중시했다. 때문에 노무현과 삼성을 이어준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노무현은 그의 경세가적 자질을 끝까지 아꼈다.

노무현은 안희정과 이광재의 종합 그 자체였다. '반칙과 특권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을 추구했지만, 정몽준과의 단일화처럼 때로는 '악마'와 손 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집권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부 친노 인사들은 조중동과 싸우고 국가보안법을 박물관에 보내려했던 노무현만 기억한다. 하지만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를 추진하고 '대연정'을 통해 선거제도를 개혁하려 한 노무현은 자주 잊어버린다.

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도 노무현의 경세가적 측면이 잘 드러난다. 김대중의 6.15 공동선언이 원대한 통일 구상과 남북관계의 전환을 상징한다면 노무현의 10.4 선언은 시시콜콜할 정도로 실용적인 사업 아이템으로 가득찼다.

박정희, 노태우 이후 가장 강력한 국방개혁을 추진하고,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세워 대양해군의 기초를 만들려 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행정수도 이전도 사실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대선 정국에서 던지기 힘든 창의적 발상이었다.

하지만 진보진영은 이런 노무현의 경세가적 면모를 배신이자 '좌파 신자유주의'의 증거 쯤으로 치부했고, 진영논리에 빠진 보수 진영은 이런 발상을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그의 서거 3주기를 맞은 지금도 진보와 보수는 자기 마음 속의 노무현만을 기억하는 듯 하다. 광화문에 전시된 노무현의 추모관에는 '비극의 주인공'만이 있을 뿐 정치가, 경세가로서 그가 가진 실력을 평가하려는 노력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그렇게 역사의 영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문제는 '노무현 이후'다. '운동가' 노무현과 '경세가' 노무현 중 무엇을 계승할 것인가?

역사는 신화와 전설로 이루어질 수 있지만, 정치는 여전히 경세가적 자질을 요구한다. 자칭 노무현을 계승한다는 야권 후보들은 과연 어떤 자질을 갖고 있나? 노무현의 행정수도 이전 처럼 그들이 던질 '킹핀' 정책은 무엇인가?

노무현에 대한 추모 열기는 오로지 노무현의 것일 뿐이다. 그를 통해 권력을 얻고자 한다면 그를 넘어설 비전과 정책을 보여달라. 지난 총선에서 국민은 이미 한번 경고를 보내지 않았는가?

2012년 5월 22일 화요일

[MH칼럼] 불침번 근무의 기억

진주 공군훈련소에서 보내었던 내 나이 스물 일곱의 봄, 그 4개월의 시간 중에서도 나에게는 지금도 잊지 못할 감동과도 같은 순간이 있다. 새벽 세시에서 네시 사이의 어느 시간이었던 것 같다. 하루종일의 훈련에 지친 훈련소 동기들이 각자의 생활관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여느 때라면 나 역시 그 깊고 무거운 잠에 빠져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날은 내가 순번에 따라서 돌아온 불침번 근무를 서는 날이었다.

훈련소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꼽자면 나는 아마도 아침 기상나팔 소리를 듣는 순간이 아닐까. "저벅 저벅"하는 소리로 시작되는, 그래서 "저벅가"로 통용되던 기상방송은 한참은 더 자야만 할 것 같던 우리를 깨우고 고단한 하루의 시작을 알렸다. 그래서인지 불침번 근무를 서야하는 순서가 다가오면 여간 신경이 쓰였던 것이 아니다. 수면시간이 한 두 시간 줄어듬으로써 쌓이는 육체적인 피로도 그 이유였겠지만, 마땅히 쉬어야 할 시간에 쉬지 못한다는 것이 주는 정서적인 스트레스도 컸다.

불침번 근무는 2주에 한번 꼴로 돌아왔다. 이것도 훈련의 일부이겠거니 생각하며 처음 몇 번은  기계적으로 근무를 섰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날 때 조금 더 몸이 무겁고, 학과 시간에 유독 졸음이 쏟아져서 기합도 많이 받게 되기도 하였지만 그런 순간들도 훈련생활에 있어서는 늘상있는 일상과도 같지 않았던가. 자다가 한밤에 깨어 군복으로 갈아입고 정해진 위치에서 한 시간 불침번 근무를 서는 것, 시계를 수십번 쳐다보며 정해진 시간이 흘러가기를 기다리는 것, 마침내 근무시간이 끝나고 침대로 돌아와 밀린 잠을 청하는 것 마저도 반복적인 일상이 되면 습관처럼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날따라 불침번 근무를 서면서 이런저런 생각, 고향 생각, 가족 생각, 친구들 생각 등을 하다가 같은 시간 곤히 자고 있는 동기 훈련생들에게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그들의 잠은 얼마나 달콤한가, 깨어서 졸음을 쫓고 있는 불침번 근무자들에 비한다면... 그런데 그 역(逆)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게 되자 불침번 근무가 가지는 숭고한 의미를 새삼 깨닿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편히 잠들었던 수많은 밤들을 지켜주었던 이들은 누구인가. 나는 여태껏 그들에 대해 어떤 고마움은 커녕, 그것을 인식하고 있기나 했었던가. 나의 잠깐의 수고로움을 통해 많은 동료들이 편한 잠을 잘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숭고한 일인가. 

나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수많은 드러나지 않는 불침번 근무자들에게 정당한 명예와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정의와 도덕성을 회복하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국회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2007년에, 대다수의 소방관들은 주말도 휴일도 없이 24시간 맞교대라는 살인적인 근무형태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현직 소방관과의 만남을 통해 알게되었다. 주 50시간 근무제도라는 규정이 무색하게, 주 100시간 근무를 수행하는 소방관들도 허다했다. 가장 위험한 곳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서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이들이 이러한 근무환경 속에서 일하도록 방치하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가 될 수 없다. 그해 국정감사에서는 소방관의 열악한 처우에 대하여 집중적인 질의가 이루어졌고, 그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지난 5년간 8,000여명의 소방관이 신규채용되고, 24시간 맞교대 근무는 3교대 근무로 상당부분 개선이 되었다.

밤 늦게 편의점에 들러도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고, 주말에 영화관에서 재밌는 영화를 보고 식당에 들러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상당히 편리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편리함 이면에 놓여져있는 심야근무자, 주말근무자들의 노고에 대해서도 함께 이해하는 것이 정의와 우정이 살아있는 정치공동체의 시민이 지니고 있을 바로 그러한 마음가짐이 아닐까. 공동체의 나머지 시민들을 위해 오늘 밤과 낮에도 수고를 아끼지 않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 그것이 우리 스스로를 위대하게 만드는 시민적 덕성(civic virtue)이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한다. 


2012년 5월 19일 토요일

[BK칼럼] 정봉주와 종합편성채널 MBN


  • [BK칼럼] 정봉주와 종합편성채널 MBN
    MBN은 종편이 되면서 그레이트 빅엿을 셀프 시식했다. 보도채널때는 최근 주중 시청률에서 YTN을 이기기도 했고, 100여 개의 채널이 난립하는 케이블에서 3,4위를 기록하던 MBN이다. 그런데 종편이 되면서 시청률은 급전직하했다. 뉴스를 보던 시청자들은 떠나갔고, 채널 번호도 바뀌었고, 왓츠업과 시트콤들은 아직 고정 시청층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것보다 더 문제는 언론으로서 MBN이 조중동과 한묶음 취급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집회현장에서 MBN 카메라를 대하는 분위기가 이미 싹 바뀌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건은 개국 둘째날 오후 3시 뉴스 M에 출연을 약속했던 정봉주 전 의원이 출연을 펑크낸 것이다.
    ...
    정 의원은 당일 오전 "종편에 대한 전선이 그어지는 상황에서 내가 나서서 선을 넘을 수 없다"며 "MBN에는 미안하지만 오늘 출연을 거부하겠다"고 트윗을 날렸다. 정봉주 전 의원을 섭외했던 담당 PD는 허탈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정봉주 전의원이 지난 서울시장 선거때 나꼼수 출연을 제외하고 가장 인상적으로 활약했던 곳은 MBN이었다. 실제로 정 전의원은 MBN 뉴스M에 출연해 진성호 의원과 1대1 토론을 벌인 것을 'MBN 대첩'으로 부르며 나꼼수에서 자랑하기도 했다. 그 출연분은 MBN 팝콘영상으로도 편집돼 선거 기간 내내 방송을 탔다.

    뉴스M의 김경중 PD는 MBN이 조중동 종편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나꼼수 출연진과 도올 김용옥 선생 등을 연달아 출연시키려고 준비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 막역한 사이라고 생각했던 정 전의원에게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물론 정봉주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한다. 트윗에 담긴 '미안함'도 읽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MBN을 자주 활용했던 정치인으로서 "그래도 MBN은 조중동과 다른데?" 하고 주변을 설득해 줄 수는 없었는지...

    MBN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MBN을 제대로 본 적은 있었나? MBN을 꾸준히 모니터하고 어떤 스탠스로 보도해왔는지 알고 비판하는 것인가? 그 동안 MBN의 보도 방향은 조중동과 달랐을 뿐더러 매경과도 꽤 달랐다. 40년 전통의 매경과 17년 역사의 MBN은 구성원이 젊은 만큼 멘탈리티도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MBN이 대단한 진보방송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비지니스 프렌들리였다. 하지만 최소한 언론으로서의 기계적 중립은 지켜왔다고 생각한다. 진보도 보수도 MBN을 통해 속 시원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언론의 역할이 그 정도면 된 거 아닌가? 꼭 누구를 적극 편들어야 하나?

    개국 당일에도 실수는 있었다. 조중동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인터뷰를 재방, 삼방한 것은 조중동과 확실히 차별화하지 못한 실수였다. 하지만 이튿날 정치부장이 문재인 이사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직접 달려갔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생중계 인터뷰를 YTN보다 먼저 내보낸 곳도 MBN이었다.

    전선을 긋는 것은 좋다. 하지만 단순화의 위험은 경계해야 한다. 또한 진보 진영이 스스로 방송을 차리기 전까지는 새롭게 생긴 매체를 활용하려는 지혜도 필요해 보인다. 어차피 공중파 3사의 독과점은 그 자체로 문제였다. 정봉주 전의원도 MBN 출연을 재고해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