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5일 금요일

[MH칼럼] 정치평론과 이데올로기


   대학원 시절에 서평을 한 편 청탁 받은 적이 있었다. 국내 주요일간지 논설위원이 그간의 칼럼들을 모아서 출판한 <칼럼집>에 대한 서평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서평을 부탁한 이는 아마도 그 책에 대한 우호적인 서평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패기 넘치던 시절이었고, 정치평론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넘치던 대학원 시절을 보내고 있던 나였기에, 겁도 없이 냉정하게 그 <칼럼집>을 비평하였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나의 젊었던 심사를 비집고 들어왔던 불만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정치세계에서 이념을 배제시키고자 하였던 일종의 비()정치적 태도였으며, 또한 이념을 극복하자고 제안하면서도 스스로의 이념적 편향은 온전히 남겨두는 솔직하지 못한 태도 때문이었다.

   정치평론가들은 중립적인 관점을 지향한다. 당연한 일이다. 예컨대 야구해설가가 프로야구 중계를 하면서 특정 팀에 특별히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많은 시청자들의 원성을 살 것이 분명하다. “응원은 우리가 한다. 해설가는 해설이나 똑바로 하라.”라고 반응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응원단>이나 <지지자>가 아니라 <정치평론가>로 인정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특정한 정치적 가치(예컨대 분배적 평등이나 경제의 양적 성장)나 특정 정책에 대한 개인적 선호를 내세우기보다는 공동체를 아우르는 보다 전체적인 관점에 설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게 될 것이다.

   공론과 의사소통의 공간에서 이념논쟁이 과잉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이 많다. 이념에 갇히면 정작 중요한 삶의 문제들을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이념은 현실의 문제를 선/악 구도로 만듦으로써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확산시킨다. 한국정치의 장에서 대부분의 논쟁들은 이념논쟁 혹은 선악구도로 재편된다. 최근의 방송법 개정안 논란은 이내 방송악법혹은 “MB악법으로 기호화된다. 그 순간부터는 묘사한 쪽도, 묘사된 쪽도 타협의 여지는 없어진다. 공론의 장은 협소해지며, 정치과정은 싸움의 난장판이 된다. 최장집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비결정(non-decision)의 결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삶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된 사회경제적 이슈들이 공론장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반면에, 정치쟁점이나 이념논란은 과잉된 구조라는 것이다. 이러한 공론장의 구조는 민주주의의 질적인 취약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정치세계에서 이념을 완전히 소거시켜야 바람직한가의 문제도 검토해보아야 한다. 미국의 정치학자 프란츠 셔먼의 정의에 따르면, 이념은 세계관과 일관된 행동지침을 동반하는 체계적 사고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과 경험을 통해서 이러한 이념 또는 신념체계를 형성한다. 이러한 신념체계들로부터 나온 개인들의 의견이 정치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정치평론가들이 주의해야 할 점은 (내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의견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데 있다. 왜냐하면 정치평론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임무는 대중들에게 좋은 의견을 제공해주는데 있지 않고, 그들이 스스로 좋은 의견을 만들어나가도록도와주는데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견해를 형성하는 것은 민주적 시민의 당연한 권리인 동시에 책임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스스로 정치적 의견을 숙고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기본요건를 전제로 성립된다. 나의 투표를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듯이, 나의 정치적 판단을 다른 누구에게 위임할 수도 없다.

   정치적으로 현명하게 생각하기(thinking politically)란 무엇일까? 두 극단의 지점 사이에서 부단히 균형점을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일까? 그것은 우리의 삶도 역시 그러한 지점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념의 과잉도, 이념의 완전한 배제도 정치세계에 대한 우리의 참된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두 극단을 아우르는 관점을 우리는 공공성(公共性)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공성을 지향하는 시민들의 노력을 우리는 덕성(virtue)라고 한다. 정치평론은 시민들의 정치적 덕성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는 것으로 충분히 그 소명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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