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11일 월요일

[신영범 칼럼] 침묵의 대학과 민주정치


   지난 2002년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이는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발전했는가?’하는 문제의식에 관한 책으로 이 질문에 관한 최장집 교수의 답변은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현실이 발전하지 못하였다면 그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이 이유를 내가 살고 있는 대학에서 찾아보려 한다.
 
   87년 이전과 현재를 비교해 보았을 때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곳이 바로 대학이다. 과거 가장 뜨거웠던 대학이 현재는 굉장히 수동적인 장소로 변해버렸으며, 학생들은 열심히 수업만을 외우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고시준비나 취업준비로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과거 수많은 학생들로 가득차곤했던 아크로는 이제는 몇 몇 학생들이 그들만의 잔치를 벌이는 애물단지 같은 곳으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과연 이러한 대학의 변신이 한국의 민주정치와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는 것인가?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일단 현실에 대한 분석에 앞서서 대학이라는 공간에 대하여 살펴보자. 과연 내가 생각하는 대학이 어떠한 모습을 띄고 있기에 현재의 민주정치에 어울린다는 것인가?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과거 중세와 근대 유럽의 대학이 형성될 시기를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중세와 근대 대학의 형성기. 이 두 시기에는 재미있는 공통점이 있다. 대학 형성의 중심에 논객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바로 아베라드와 피히테이다. 이들은 토론을 즐겼으며 배움을 추구하였고, 이를 위하여 먼 길을 떠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특성을 가졌다. 따라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시대의 현자들에게 배움을 청하였고, 현자들과 토론을 하였으며, 때로는 그들에 대한 도전도 불사하였다. 물론 이들 사이에는 차이점도 있다. 아베라드가 주로 당시의 일반적 학풍에 대한 대듦으로 당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였다면 피히테는 여러 학자들 간의 토론을 통해 학문의 연계를 추진하였다는 점이 바로 이 둘 간의 차이점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의해서 그들 당시의 유럽은 지적인 공론장의 분위기가 형성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에 따라서 아베라드 시기에는 중세의 대학이, 피히테 시기에는 근대의 대학이 형성될 수가 있었다.

   따라서 당시의 대학은 굉장히 논쟁적인 성격을 지닌 곳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에 대하여 많은 참여를 담보해 주는 곳이었다. , 대학이 사회적 토론의 장을 마련해 준 곳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중세 대학에서는 축제시기에 절정을 이룬다. 중세 대학의 축제는 토론으로 시작하였으며 열띤 토론의 끝과 함께 술과 고기로 파티를 열었던 행사로, 대학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까지 그 토론에 함께 할 수 있었던 곳이다. , 모든 이들이 참여하여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던 자리이다. 이러한 참여와 토론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는 바로 사회내부에 정상적인 의사소통 구조가 형성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이러한 토론과 참여가 정치적으로 확대되었을 시에는 흔히 말하는 민주정치의 이상 “self-rule”이 가능해진다는 점에 참여와 토론이 가지는 정치적 함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중세의 대학과 같은 분위기의 형성이 민주정치를 위하여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고, 그 중심에는 아베라드와 피히테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대학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선 대학의 전반적인 모습을 살펴보기에 앞서 대학생의 삶부터 살펴보자. 다음은 대학생인 나의 하루 일과이다. 아침 기상시간은 보통 아침 6시이다. 7시에는 영어회화 학원이 있으며, 8시에 학원을 마치면 그 근처에서 아침을 해결한 후(물론 혼자서) 곧장 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 수업은 모두 오후에 몰려 있으며, 오후 6시에 모든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요일별로 농구, 토론, 과외, 학생회 운영위원회 활동 등을 하고 이 일이 끝나고서는 친구들이나 선후배와 함께 가볍게 한잔하러 가거나 혹은 기숙사에 들어와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오전 6시 즈음에 첫 강의를 듣고 모두가 함께하는 기숙사 생활을 통해 공동식사를 하며 저녁시간에는 그들만의 자유시간을 가졌던 중세의 대학생의 생활과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현대의 대학은 묘하게도 너무나 정적인 장소로 변해가고 있다. 과거 어느 곳보다 더 시끌벅적하며 생기가 넘치는 곳으로 묘사되었던 대학이라는 공간이 현재는 그 어느 곳보다도 조용한 학위의 전당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대학의 학생들은 점점 누구보다도 순종적이지만 어느 누구에게서도 속박 받지 않는 자유인이 되려하고 있다. 이 속에서 나와 다른 삶과 다른 학문을 하는 이들은 남남으로 여기는 풍토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나의 말이 믿어지지가 않는다면 평소 대학의 교정을 걸어보고 대학의 학문을 느껴보아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학사회 내부의 공동체를 살펴보라.

   대학의 성당학교화는 대학 내부에만 파장을 미치는 일이 아니다. 이는 사회 전반으로 영향력을 확장해간다. 특히 이러한 점은 민주화 이후의 한국정치에 큰 파장을 불러올 사건이다. 민주화 이전에는 무엇보다도 민주화라는 뚜렷한 목표가 존재하였다. 그 결과 민주화를 둘러싸고 사회의 각계각층에서의 연대가 이루어 질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역동성을 담보할 수 있었고, 민주화를 통해서 한국정치의 질적 발전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뚜렷한 목표가 사라져 버리면서 각계의 연대는 깨져버렸다. 이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이 세력들 간의 토론을 통한 정치적 의사의 형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제는 더 이상 한국정치에서 키 역할을 해 줄 뚜렷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키 역할을 토론을 통하여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민주정치는 이리저리 표류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한국사회에서 토론장은 매우 빈약하다. 그 결과 최장집 교수가 지적하였듯이 한국의 민주정치는 민주화 이후 질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였고, 좌충우돌의 코미디가 되어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성당학교화 되어버린 대학과 따로 떨어뜨려 놓을 수 없다. 한국사회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의 중심에 서있는 대학사회의 학생과 교수들의 대화와 토론이 단절되어 버리고 왜곡되어 버린다면 이는 비정상적인 의사소통 구조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변화가 한국의 민주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점은 바로 이 점과 관련되어 있다.

   과거 1950년대 중국은 모택동의 반()우파투쟁을 통한 사회, , 지식인층 내부의 의사소통 구조를 비정상화시켰고, 이는 결국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을 저지할 수 있는 보호막을 걷어내버리는 꼴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비정상화는 강제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날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계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적 토론의 기초가 되는 대학의 의사소통 구조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 필요하다. 현재 침묵의 대학으로는 절대 민주정치의 발전을 보장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 한국 민주정치의 질적 발전을 위해서는 아베라드 적인 대듦이 아닌 객기를 통한 의사소통이라도 절실히 필요하다

댓글 1개:

  1. 신영범 군이 2005년도 정치학과 수업시간에 제출했던 페이퍼입니다. 직접적인 삶과 경험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좋은 글로써, 우리의 정치평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삶의 경험에서 출발하는 정치평론은 동료시민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고, 실제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필자의 동의를 구하고 게재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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