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를 마치고 처음 시카고 대학에 유학 왔을 때 가장 놀랬던 것은 캠퍼스에 하이힐 신은 학생이 없다는 것도, 백팩을 매지 않은 학생이 거의 없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내가 가장 놀랬던 것은 바로 수강신청을 한 수업의 책을 사러 들어간 CO-OP이라는 대학 서점에서 마주한 책의 종류들이었다. 내 기억에 명색이 대한민국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서울대 교내 서점은 겹겹이 쌓인 고시 서적과 영어 교재들, 혹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나 가벼운 소설들이 주인공으로 자리한 공간이었다. 수업 시간에 언급되었던 고전들이나 좀 ‘심각한’ 책들을 출판하는 한길사나 후마니타스의 책들은 구석에서 가끔 전해져오는 손길을 기다릴 뿐. 대학의 교재 역시 여러 논문들이나 책의 몇 챕터를 따다가 제본한게 주를 이루었고 말 그대로 ‘고전’이라고 불리는 책을 한 권 제대로 다 읽는 경우는 정치철학 수업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런 풍경에 익숙했던 나에게 시카고 대학 서점은 말 그대로 충격이었다. 미로처럼 생긴 서점의 처음부터 끝까지 고전들이 책장 가득가득 쌓여 있었고 각 수업의 교재들 역시 이러한 고전들이 적어도 10권 이상씩 할당되어 있었다. 일요일 아침마다 녹두에서 했던 고전 읽기 모임에서 읽으려고 찾아보려고 해도 서울에서 찾기 힘들었던 칼 폴라니의 ‘거대한 변환’과 (결국 범기오빠가 공사 도서관에서 찾았던 걸로 기억한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는 서점의 안방마님처럼 당당히 그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빠지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이를 교재로 쓰는 수업이 단순히 철학 수업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학, 종교학, 미학, 역사학, 수학 등 인문 사회 자연 과학의 다양한 학문 분과들에 이 교재들이 학생들에게 읽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도서관에서 목격하는 풍경들도 하나의 신선한 충격이었다. 늘 고시생들이나 그 어떤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즐비하고 중간,기말고사라도 겹칠때면 자리잡기가 힘들었던 그 빽빽한 도서관과 달리 넓고 쾌적한 도서관에서 학부 아이들은 몽테스키외를 읽거나 홉스를 읽으며 에세이를 쓰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책을 읽고 아이들은 많은 글을 써서 냈다. 내가 조교를 했던 수업에서는 아이들이 essay를 과제로 내면 교수나 박사과정 조교가 당연히 아주 꼼꼼하게 코멘트를 붙여서 다시 학생들에게 돌려줘야 했고 자신의 받은 코멘트에 궁금한 점이 있거나 수업내용에 질문이 있는 학생들은 언제든 교수님과 조교를 찾아서 질문을 했다. 내 학부시절을 되 돌아보면 꽤 많은 ‘레포트’를 제출했던 것 같은데 내가 받은 건 성적이었지 내 글에 대한 꼼꼼한 코멘트는 없었던 것 같다. 거기에 비하면 미국의 학부 교육은 철저한 피드백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인상을 받았다.
하버드로 박사 과정을 오면서 코스워크가 끝나고 다시 학부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하버드는 시카고 대학보다 학부교육이 좀 더 체계적으로 짜여 있었다. 미국의 대부분의 대학은 정규 수업외에 section이라는 것이 따로 있다. 정규 수업의 규모가 큰 경우 조교가 따로 discussion section을 일주일에 한번씩 열어서 수업 중에 하지 못한 질문을 학생들이 하고 부족했던 토론을 하는 것이다. 조교 한명당 18명의 학생이 주어지고 만약 수업을 듣는 학생이 19명이면 반드시 조교가 2명이 할당되어야 한다. 맨큐 교수가 가르치는 경제 원론 수업의 경우 대형 강의를 맨큐 교수가 하고 일주일에 무려 3번씩 조교들이 section을 한다. 대형 강의는 큰 그림만 짚어주기 때문에 이때 생긴 의문이나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section을 통해서 알아가고 이해해 간다.
다시 학부시절로 돌아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대부분의 사회대 전공 수업들은 50명이 훌쩍 넘는 수업들이었지만 조교는 1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100명이 넘는 수업이 되야 조교아 2~3명 정도 있었고. 시스템이 이렇다보니 조교가 학생들을 데리고 개별 section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고 학생들은 대형 강의만 반복해서 들으면서 한 학기에 단 한번도 수업시간에 말을 하지 않은 채 학기를 마무리 하는 일이 많아졌던 것 같다.
매주 섹션이 있고 말 할 기회가 더 많은 미국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도 매우 적극적이다. 어릴때부터 받아온 훈련이 우리와 달라서일지 모르겠지만 ‘남 눈치’ 보는 일이 없다. 모두가 이해하고 나만 이해 못했더라도 그걸 부끄러워 하거나 ‘있다 집에가서 이해해야지’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바로 교수에게 질문을 한다. 자기가 모르던 부분을 질문함으로써 이해하고 그로부터 흥미가 생겼을 때 학부생들이 매우 자주 쓰는 말이 바로 “it’s fascinating!’ (환상적이야!) 이다. 이런 환경과 마음가짐이라면 공부가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비단 수업 시간 뿐만 아니라 연사가 초청되는 세미나나 학술 행사에도 학부생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한다. 물론 교수가 앞쪽에 앉고 학생들이 주욱 강의실 뒷줄부터 채우는 일도 없다.생각해보면 학부생들은 수강신청 사인받거나 장학금 신청할 때 오르락 거렸던 교수님들의 오피스가 있었던 사회대 4,5,6 층 게시물판에는 다양한 세미나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학부생들에게 잘 소개가 되지도 않았고 학부생들이 참여하면 오히려 어색하고 ‘엄한’ 분위기의 세미나가 많았던 것 같다.
하버드는 이 외에도 학부교육에 엄청난 자원과 애정을 쏟아 붇는다. 수업 각각에 피드백 시스템이 존해하고 새로운 교수법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허전한 마음을 비켜갈 수가 없었다. 관악의 학부교육이 자꾸 비교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회 구조적인 문제들이 얽혀있기 때문에 대학이 바뀐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학이 할 수 있는 일들은 해야한다.
한국의 대학에 잃은 활기와 지성을 되찾기 위해서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대학생들의 ‘몸’을 자유롭게 하는 다양한 상업시설을 들여오고 건물을 개보수 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생들의 ‘머리’를 자유롭게 하는 일들이 필요하다. 수업의 실라부스를 고민하고 더 많은 책과 고전을 읽히고 학생들이 글을 더 많이 쓰도록 하게 해야한다. 학생들이 쓴 글에 대해서 반드시 피드백을 주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학생들이 말을 하게 하라.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과 의문을 교실안에서라도 훨훨 내 뱉게 해야 한다. Fact를 전달하고 새로운 것을 알게하는 역할은 대학이 아니라 인터넷이 하고 있다. 우리 시대 대학이 대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읽고 쓰고 말하는’ 훈련이다.
먼저 정말 잘 읽었습니다.
답글삭제모든 내용에 깊이 공감합니다.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무조건적인 선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 분명 많을 터, 그에 대한 간략한 스케치라도 꾸준히 게재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단 생각입니다.
끝으로 말 그대로 사족을 달자면, 우리 교육은 읽고 쓰고 말하는 훈련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이전에 무엇보다도 '듣기' 교육 또한 전무한 것 같습니다. 이는 오독과 오해로 이어지고 비생산적인 토론을 낳고 지성계 전반의 침체로 이어진단 생각을 해왔습니다.
여하간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저는 정치과 석사과정 박천우라고 합니다.
답글삭제천우야 안녕? 나 기억안나니? 예전에 너 군대가기전에 사회대에서 인사하고 지냈던 것 같은데 :) 글 재미있게 읽어줘서 고마워. 나도 미국의 교육 시스템이 무조건 선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것들 속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들이 많은 것 같아서 생각을 한번 정리해봤어. 영범이가 쓴 한국의 대학 교육에 대한 글을 읽고 더더욱 한번 정리해 둬야 겠다고 생각해서 글을 썼어. 석사 과정에 있구나! 공부 재미있게 하길 바래 :)
답글삭제저기 죄송하지만 반미 외치면서 미국유학은 왜 가시는건지
답글삭제안녕하세요 교수님. 모세에요
답글삭제시사인 칼럼 읽고, 혹시 다른 칼럼 쓴거 없나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 ㅎㅎㅎ
저도 미국에서 쭉 살았지만, 워낙 성격이 내성적이라 미국 대학교에서 제공하는 좋은 교육 인프라를 많이 못 누리고 온게 살짝 아쉽네요.
지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스스로 읽고, 생각하고, 쓰고 말하는 연습을 해보려고요.
다음에 뉴욕가면 식사라도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