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에 27권씩 팔린다는 그 책을 샀다. 책이 나온 다음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였다. 대선주자들의 책을 모아놓은 매대 위에 그 책이 없어서 서성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불쑥 '안철수의 생각'을 올려놨다.
"방금 전까지 이 만큼 쌓여있었는데 다 어디갔죠?"
잠깐 들고가서 보는 사이에 매대의 책이 품절됐던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초판 1쇄'를 손에 넣은 나는 남들보다 하루 이틀 먼저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사흘만에 독파한 '안철수의 생각'은 마치 '다크나이트 라이즈' 같았다. 전작 '다크나이트'가 높여놓은 기대감 때문일까? 시리즈의 완결판은 꽤 잘만든 블록버스터임에도 실망감이 앞섰다.
이 책도 그렇다. 한국 사회의 모순 부조리를 치유할 V3 백신이 담겨있길 기대했기 때문인지, 내용 자체는 기대에 못미쳤다. 복지와 정의, 평화의 가치를 내세우고, 자살률과 출산률로 한국 사회의 위기를 진단했지만, 어디선가 다 들어본 이야기다.
안철수의 전공분야라 할 수 있는 대기업-중소기업 문제와 경제민주화 부분은 원론적인 지적에 그쳤고, 디테일한 정책이 부족했다. 전속고발권을 가진 공정거래위에 대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했지만, '전속고발권 폐지'로까지 나아가진 못했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핵심 영역인 외교안보에 대한 논의가 아예 실종됐고, 대북정책에 대한 접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양자를 비판하며 어정쩡한 중도 노선을 걷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아이디어도 있었다.
"성장을 해야 복지를 한다"가 아니라 "복지를 해야 성장도 된다"며 증세의 필요성을 언급한 점은 용기있다. 대법관을 종신화해 전관예우성 로비를 차단하고 국사 뿐 아니라 세계사를 필수로 가르쳐야 한다는 지적도 귀담아 들을만하다.
결국 안철수의 생각은 우리나라 야권 성향 지식인의 평균적인 관점에 수렴하고 있다. 그의 나이와 경험의 폭을 고려하면 빼어난 측면도 없지 않다.
안철수는 올해로 만 50세다. 그가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먼저 정치를 할 것을 권하고 싶다. 초선 국회의원이든 일개 부처의 장관(교육과학기술부 정도?)이든 국정운영 경험과 경륜을 쌓아주길 바란다.
안철수는 도전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식인 안철수가 도전해야 할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정치 그 자체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은 아직 그에게 버거워 보인다. 19대나 20대라면 지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것이 그의 생각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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