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바마 의료보험 개혁안(Obamacare)을 살려낸 로버츠 대법원장의 정치적 지혜
2012년 6월 28일, 미국은 의료보험 개혁을 둘러싼 지난 100여 년 간의 지난한 논쟁을 일단락 짓는 위대한 순간을 맞이하였다. 의료보험 개혁안의 위헌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키를 쥐고 있던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이 마침내 자유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연방대법관 5:4의 결정으로 의료보험 개혁안이 그 생명력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사실,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분류되고 있었으며, 연방대법관들의 정치성향은 보수-진보의 기준으로 평가하였을 때 보수(5명) v. 진보(4명)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진보적인 정책인 의료보험 개혁안(Obamacare)이 연방대법원의 위헌법률심사(judicial review)를 과연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었다.
법관들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인 경향을 띄는 것은 미국만의 독특한 특징이 아니다. 법관들은 법률이 사회질서 유지의 최후의 보루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법관은 질서의 수호자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과 사명감은 시민들이 법관에게 기대하는 역할이기도 하다. 하지만 법관들이 법적인 판단의 영역을 넘어서서 정치적 판단의 영역에 정파적인 입장을 관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정치의 영역이지, 사법의 영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법이 정치의 영역에 부당하게 관여할 때, 정치는 후퇴하며 사법은 타락한다.
미국의 고급정치평론지 뉴리퍼블릭(TNR)은 사설과 정치평론을 통해 의료보험 개혁안 위헌논쟁의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연방대법원의 역할과 그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강조하였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이 연방대법원에 부여한 권한은 헌법에 배치되는 의회의 입법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었다. 따라서 연방대법원은 오직 헌법과 법 논리에 기초하여 의회에서 만들어진 법률을 심사할 수 있을 뿐이다. 법률의 위헌심사(judicial review)의 과정에서 개별 법관들의 정치적 성향을 반영시키는 것은 삼권분립의 정신에 위배되며, 사법부가 스스로에게 부여되지 않은 권한을 사용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리는, 나아가 공동체의 건강함을 훼손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이러한 한계지점을 잘 알고 있었으며, 좀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픈 유혹을 잘 이겨내었다. 로버츠는 판결문에서 “의료보험 개혁안이라는 정책이 올바른 정책인지, 아니면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 정책인지를 결정하는 정치적 판단의 권한은 사법부에 있지 않다. 그 결정은 국민이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한 정치지도자들의 손에 맡겨진다.”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에게 주어진 가장 어려운 난제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입법부와 사법부 사이의 힘의 균형을 조정하는 것이었던 것 같다. 만약 연방대법원이 의료보험개혁안을 위헌으로 결정한다면, 의회에서 오랜 논의와 숙고의 과정을 거쳐서 민주적으로 결정된 수많은 정책들이 연방대법원의 단 9명의 판사들의 손에서 유지되거나 폐기될 수 있는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사람들은 특정 정책에 대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연방대법원으로 달려가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정치의 기능을 마비시키며, 사회적 대혼란을 가져올 것임이 명백하다. 이는 곧 판사들이 그들의 힘을 사려 깊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이다.
반대로 연방대법원이 의료보험 개혁안을 합헌으로 결정한다면, 의회는 무제한적인 힘을 가지게 될 것이었다. (보수주의자들이 주로 주장한 것이지만) 의회가 모든 시민들에게 의료보험을 갖도록 명령할 수 있다면, 같은 권한으로 의회가 모든 시민들에게 브로콜리를 사도록 명령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의 자유에 대한 의회권력의 부당한 침범으로 해석된다.
보수주의자들이 의료보험 개혁안에 극렬하게 반대한 것도 바로 이 ‘이행명령’(mandate)이라는 방식 때문이었다. 의료보험 개혁안에 따르면, 모든 미국시민들은 국가 의료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규정되며(mandated) 이를 어길시 벌금(penalty)이 부과된다. 보수주의자들은 시민들이 의료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스스로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이지, 국가가 의무적으로 그것을 구매하라고 규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의회가 시민들에게 이러한 ‘이행명령’(mandate)을 분별없이 남발하는 상황, 예컨대 브로콜리를 사도록 지시하는 상황에 대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도 크게 우려하였다.
어느 쪽의 손도 쉽사리 들어줄 수 없는 딜레마의 상황에서, 로버츠는 아주 기발하고도 현명한 방책을 떠올렸다. 이 방책으로 인하여 연방대법원은 의료보험 개혁안의 실질적인 기능은 유지하면서도, 의회가 무제한적으로 이행명령(mandate)을 남발하는 사태는 방지할 수 있었다.
로버츠는 의회가 시민들로 하여금 시장에서 무엇을 거래해도 되는지를 일정부분 규제(regulate) 할 수는 있지만, 무엇을 구매하도록 명령(mandate)할 권한은 없다고 판시하였다. 예컨대 의회는 시장에서 마약이 거래될 수 없도록 규제(regulate)할 수는 있지만, 모든 시민들이 건강을 위해 브로콜리를 구매하도록 명령(mandate)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로버츠는 새로운 의료보험체계 속에서 미가입자들에게 부과되는 비용이 위법한 행위에 따르는 벌금(penalty)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으로서 공유하는 책임에 따른 부담(the shared responsibility payment)의 성격을 지닌 세금(tax)의 의미를 지닌다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국회는 종종 사람들에게 금연을 권고하기 위해 담배세와 같은 세금을 부과한다. 로버츠는 “조세법 체계 하에서 의료보험 의무가입조항(individaul mandate)를 유지하는 것은 어떠한 새로운 연방정부의 권한을 신설하는 것이 아니며, 의회가 이미 가지고 있는 권한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밝힘으로써 의회 권한의 한계지점을 명확하게 설정하였다.
이러한 로버츠의 해석은 상당히 대담하고 용기 있는 행위였음이 분명하다. 의회가 그 스스로 ‘의무가입 조항’(individual mandate)을 ‘개인들에게 의료보험을 구매하도록 명령하는 것’(commands individuals to purchase insurance)이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명령(command)은 헌법정신에 위배되며 대신에 ‘의무가입 조항’은 시민으로서의 공유된 책임을 지는 행위, 즉 납세의 의무 속에 포함된다는 독자적인 해석을 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 로버츠는 판결요지(Syllabus)에서 이러한 해석을 기능주의적 접근(a functional approach)라고 다음과 같이 당당히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법원의 결정은 기능주의적 접근이다. 그것은 의회가 의무가입 조항의 명칭을 무엇으로 명명하였는지에 관계없이, 그것의 실제적인 기능과 적용이 무엇인지를 살펴봄으로써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이번 판결을 통해 먀셜 판사와 홈즈 판사가 세운 美 연방대법원의 위대한 전통을 계승하는 최고의 법관의 반열에 올라섰다. 연방대법원은 현명하고도 균형 잡힌 판결을 통해 사법부와 입법부의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새롭게 정립하였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이 판결로 인하여 그동안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수 백 만 명의 미국인들이 새롭게 의료보험의 혜택범위 속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상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3억 명의 미국인을 포괄하는 세계 최대의 새로운 사회적 프로그램이 무사히 첫 발을 내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위대한 결정은 사법부에 부여된 법률해석의 권한 속에서, 당파를 초월하여 보다 실용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자 부단히 노력했던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리고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사법부가 가진 조그마한 권위의식을 포기함으로써 공동체가 한 단계 훌륭하게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연방대법원 판결요지(Syllabus)의 감동적인 마지막 문구를 인용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법원이 헌법에 위배되는 법령에 직면하였을 때, 법원은 의회의 입법정신을 최대한 존중하고 지켜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것을 무조건 파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When a court confronts an unconstitutional statute, its endeavor must be conserve, not destroy, the legislation)
※ 참고문헌
· 美 연방대법원 판결문(National Federation of Independent Business et al. v. Sebelius, Secretary of Health and Human Services, et al.)
· Ronald Dworkin, “Why the Health Care Challenge is Wrong”, New York Review of Books, April 2, 2012.
· The Editors, “Judgment day”, The New Republic, April 20, 2012.
· Jonathan Cohnmay, “Why the Justices Should Be Careful, The New Republic, May 1, 2012
· Robert Barnes, “Supreme Court uphold Obama’s health-care law“, The Washington Post, June 28, 2012.
· Linda Greenhouse, “A Justice in Chief“, The New York Times, June 28, 2012
민혁아 정말 꼼꼼히 판결문을 읽은 흔적이 글에서 보이는구나. 네 탁월한 해석에도 박수를. Roberts가 chief justice로서 Roberst Courts의 legacy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그리고 사실 2000년 이후 미국 정치에서 "court activism"에 대한 비판이 급증했고 최근 기업들이나 노동조합이 무한대로 선거에서 돈을 쓸 수 있도록 길을 터준 Citizen United 등의 일련의 판결들이 현실정치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는지를 직접 보면서 연방 대법원이 Healthcare라는 또다른 판도라 상자를 열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한 것 같아. 데이터를 보면 의회가 한 결정을 Supreme Court가 뒤집은 경우도 역사적으로 매우 매우 드물고. 하지만 그 동안 Roberts 연방대법원장의 판결들을 봤을 때 이것이 "당파를 초월하여 보다 실용적이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자 노력했던" 것이라는 점에는 나는 좀 회의적이야. 이 글을 읽고 든 느낌이 민혁이의 평론이 '연방대법원'의 시각 (perspective)에서 쓰여졌다는 느낌이 들어. 대법원의 판결이 중요하긴 했지만 결국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수백 만명의 미국인들이 새롭게 의료보험의 혜택에 들어오게 된 것"은 지난 3년 반 동안의 오바마와 민주당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나는 생각해. 좋은 글 잘 읽었다 :)
답글삭제혜영 누나, 감동적인 코멘트네요. 감사해요(*^^*) 이 글이 '연방대법원'의 시각에서 쓰여졌다는 누나의 지적은 저도 인정해요. 오바마케어의 승리가 로버츠 대법원장의 몫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오바마와 민주당 지지자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로버츠의 기여가 과장된 측면도 있는데, 사실 그 부분은 제가 좀 의도했던 부분이기도 해요. 뉴리퍼블릭 사설을 보면 때때로 이런 식의 "과감하게 칭찬해주기" 레토릭이 사용되던데, 그런 레토릭이 정치적으로 갖는 긍정적인 부분이 느껴져서 한번 따라해보려고 했어요.^^
답글삭제다만, 로버츠의 판결문을 읽으면서 이 정책을 입안한 민주당이나 오바마의 정치적인 고려의 미흡성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다소 아쉬움을 느낀 부분이 있어요. 판결문에서도 지적되었듯이, 공공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에게 "불법"(illegal)이라고 규정하고, 그 대가로 "벌금"(penalty)를 부과하는 형태를 취하게 한 것이 과연 정치적으로 신중한 방식이었는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거든요. 결국 위헌소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제기되기도 하였구요. 로버츠 대법원장도 이러한 문제때문에 약간은 억지스러운 "기능주의적 접근"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고, 어쨌거나 복잡하게 얽혀있던 "individual mandate"의 문제를 법 논리를 약간 희생하면서도 실용적으로 해결한 로버츠의 역할이 제게는 더욱 돋보였던 것 같아요. 누나의 코멘트를 읽으면서 저도 이 문제를 더욱 깊고 다양한 시각에서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좋은 코멘트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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