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9일 수요일

[MH칼럼] 상실의 시대 ② : 한국 중산층의 몰락과 <최저임금제도>의 재조명(1)


혁명은 어떤 순간에 일어나는 것일까? 혁명은 정치적 지배와 사회적 질서가 "가장 억압적인 경우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개개인들에게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파렴치하고 성가시게 느껴지는 시점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개개인들은 과연 언제 그러한 참을 수 없는 가혹함을 느끼는 것일까? 지배계층이 마땅히 부담해야 하는 공공질서 확립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방안 마련의 책임은 방기한 채 그들 자신이 소유한 특권은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우리의 통념과는 다르게, 18세기 말 유럽에는 프랑스보다도 더 억압적인 통치들이 시행되고 있는 나라들이 많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당시 프랑스의 귀족들은 자신의 영지를 떠나 파리로 몰려들었고, 파리의 궁정과 살롱에서 벌어지는 파티에 정신이 팔린 귀족들은 그들에게 기대되는 정치적 책무의 수행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져갔다. 프랑스 혁명의 원인은 하층계급에 대한 과도한 수탈 때문이기 보다는, 프랑스 귀족들의 <정치의 실패><정치적 감각의 상실>의 결과였다.

물론, 정치가 최소한의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면 대중들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낄만한 억압과 수탈은 발생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균형장치가 발동하고, 냄비가 끓어 넘치기 이전에 불을 낮추는 조치가 취해지기 마련이다특권계층이 가진 최소한의 정치적 감각(즉, 눈치)이다. 그러나 정치가 상실된 정치공동체는 브레이크가 나간 기차와도 같아서 혁명을 피할 수 없다. 이상은 프랑스의 정치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에서 분석하고 있는 결론이다.

지난 2010년에 이슈가 되었던 최저임금 10원 인상 제안사건을 바라보면, 과연 우리 정치공동체에는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제어할 만한 최소한의 정치적 지혜조차도 상실된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지난 10년간의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이 9.5%로 높은 수준이었고, 최저임금 상승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실업을 증가시키고 중세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경영계의 주장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저임금 동결도 아닌 ‘10원 인상안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을 넘어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계층에게 얼마나 모욕감을 주었을까.

최근에 미국의 고급정치평론지 <뉴리퍼블릭>(The New Republic, 이하 TNR)에서는 최저임금의 최소요건”(Bare Minimum)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하였는데, 한국의 <최저임금제도>와 관련한 문제들에 있어서도 유용한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TNR<최저임금제도>가 경제위기와 양극화의 상황에 있어서 특히 유용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첫 번째로, <최저임금제도>는 중산층과 저소득 계층에 대한 직접적이면서 가장 효과적인 소득 재분배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최저임금제도>의 수혜자가 얼핏 보기에는 용돈벌이를 위해 나선 청소년 아르바이트생들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수가 25세 이상의 실제 경제활동인구에 해당된다. 한국의 경우에도, 최저임금으로 노동하는 계층의 상당수는 가계부양의 책임을 지고 있는 중장년층과 노년층 인구가 상당부분 포함되어있다.

두 번째로, <최저임금제도>는 내수진작을 통한 국내경기 활성화에 기여한다. TNR최저임금의 인상은 재화를 가장 잘 소비할 것 같은 사람들의 손에 쥐여 주는 것이며, 심지어 그것은 정부재정에서 한 푼도 지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 경제위기의 상황에서는 수출을 통한 해법을 모색하기 힘들다. 그리고 정부 재정정책을 통해 이루어지는 국내 경기 활성화 방안은 정부의 재정적자만 증대시킨 채 돈의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것에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하면,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효과는 <내수 진작><재정 건전성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는 환상적인 방안이다.

이쯤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그렇다면 왜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에 소극적일까? 하는 점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최저임금>의 인상이 <실업률>을 증가시킨다는 믿음 때문인 것 같다. 미시경제학 교과서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 설명이지만, <최저임금제도>를 통한 정부의 노동시장 규제는 <최저임금> 이하로만 임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 고용주들이 고용을 포기하게끔 만들어서 결과적으로 미숙련 노동자들의 실업을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올 수 있다는 것이 미시경제학자들의 주장이며 경영계의 입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의 <최저임금제도>와 관련한 사례연구들은 이와 상반되는 연구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실제 현실에서는 <최저임금제도>로 인한 실업증가 효과가 존재하지 않거나, 있어도 상당히 미미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실업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임금인상은 노동의 생산성을 증가시키고 노동자들의 이직률을 감소시켜서 결과적으로는 보다 나은 고용환경을 창출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최저임금 수준의 상승이 국가 간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주장도 실제로 최저임금 노동자가 고용되는 산업의 특성을 살펴보면 설득력을 잃는다. 미국의 경우,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의 60%는 서비스업종(주로 패스트푸드점 직원)에 종사하고 있다. 그리고 서비스업의 노동은 제조업의 노동과는 달리 임금 절감의 이유로 노동을 해외로 아웃소싱 하기에 힘든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미국 맥도날드의 햄버거 패티를 굽기 위해서 중국에 살고 있는 노동자에게 그것을 아웃소싱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대비해서, 제조업에 있어서는 가능하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생산은 중국으로 아웃소싱 되고 있다) 따라서 최저임금 인상이 국가의 임금경쟁력을 하락시켜서 실업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매우 제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와 양극화, 국내 경기침체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TNR의 주장은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공론의 장에서 검토를 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최저임금제도>와 관련된 한국의 특수한 경제구조(자영업자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고, 이들 중 상당수는 몰락해가는 중산층으로 구성되어 있음), 그리고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된 정치적 고려요소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나가도록 하겠다

2012년 8월 25일 토요일

[MH 칼럼] 상실의 시대 ① :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詩人 이성복의 , “그날중에서)
 
시인의 눈에는 모두가 병들어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더 큰 부조리함이 존재한다. 병이 들었다면 마땅히 아파해야하고나아가 병을 치유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은 더욱 깊어져서 마침내 우리를 파괴시키고 말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쇠파리에 비유했다. 그가 살던 시기, 아테네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소피스트들이 정치를 타락시켰고, 시민들은 공적인 미덕을 상실해갔으며, 정의는 고려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번영의 상징이었던 아테네는 마치 영원한 잠에 빠지려는 황소와 같았다. 그런 가운데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광장에 나가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동료시민들에게 질문하고, 현학적인 논변을 펼치는 소피스트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쇠파리가 소를 귀찮게 굴어서 잠에 들지 못하게 하듯이, 소크라테스는 동료 시민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논전을 펼치고 다녔다. 그 귀찮음에 지친 아테네 시민들은 배심원 평결로서 소크라테스에게 사약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이 후회를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훌륭한 자를 부당하게 죽였다는 반성이 시민들에게 되돌아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아테네 시민들을 반성하고 성찰하게 하려했던 그의 마지막 정치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타락한 아테네에서 진리와 정의를 되물었으며, 이성복 시인은 무언가 중요한 것이 상실 되어버린 시대에서 병들었으나 아프지 않는부조리한 세태를 지적했다. , 병들었으나 아프지 않았을까?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삶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복의 <그날>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비를 통해서 공감능력이 상실된 삶이 얼마나 냉소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흉악범죄가 일어나는 것이 비단 형벌이 준엄하지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배움의 전당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과 집단괴롭힘의 문제는 우리사회의 과열된 경쟁, 그리고 뒤쳐진 이들에 대한 배제의 분위기와 과연 무관한 일일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단편적으로 제시되고 사라지는 근시안적인 대책이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상실되고 있는 중요한 가치들 - 예컨대 자유와 평등과 시민들의 동료의식 - 에 대한 근본적인 토의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은 앞으로 이어질 두 편의 글의 序言이다.
 

* 상실의 시대 : 중산층의 몰락과 <최저임금제도>의 재조명
* 상실의 시대 : 희망과 미래, 예측가능성이 있는 삶

‎[BK칼럼] 우리는 <안철수의 생각>을 제대로 읽었을까?



1분에 27권씩 팔렸다는 그 책을 샀다. 책이 나온 다음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였다. 대선주자들의 책을 모아놓은 매대 위에 그 책이 없어서 서성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불쑥 <안철수의 생각>을 올려놨다.
 
"방금 전까지 이 만큼 쌓여있었는데 다 어디 갔죠?"
 
잠깐 들고가서 보는 사이에 매대 위의 책이 품절됐던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초판 2'를 손에 넣은 나는 남들보다 하루 이틀 먼저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사흘만에 독파한 <안철수의 생각>은 마치 '다크나이트 라이즈' 같았다. 전작 '다크나이트'가 높여놓은 기대감 때문일까? 시리즈의 완결판은 꽤 잘만든 블록버스터임에도 실망감이 앞섰다.

그 책도 그랬다. 한국 사회의 모순 부조리를 치유할 V3 백신이 담겨있길 기대했기 때문인지, 내용 자체는 기대에 못미쳤다. 복지와 정의, 평화의 가치를 내세우고, 자살률과 출산률로 한국 사회의 위기를 진단했지만, 어디선가 다 들어본 이야기 같았다.

안철수는 올해로 만 50세다. 그가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먼저 정치를 할 것을 권하고 싶었다. 초선 국회의원이든 일개 부처의 장관이든 국정운영 경험과 경륜을 쌓아주길 바랬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은 아직 그에게 버거워 보였다.
 
<안철수의 생각> 이후의 반응

하지만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고 안철수의 지지율은 오히려 치솟았다. 한때 양자 대결 뿐 아니라 야권주자를 포함한 다자 대결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안철수 대통령의 등장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렇다면 내가 <안철수의 생각>을 잘못 읽은 것일까? 그저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의 짜깁기 정도로 판단했던 것은 책 좀 읽었다는 기자의 오만이었을까? 국민들은 그 책과 안철수에게서 어떤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안철수의 생각>을 집중 해부하는 대담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김 소장님(이하 존칭 생략)과는 <결혼불능세대>라는 대담집을 함께 출간하며 한 차례 정책 대담을 진행해본 사이였다.

전작인 <결혼불능세대>에서도 밝혔지만, 김 소장은 진보 진영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책 전문가이자 왕따논객이다. 정치 전문가만 넘쳐나고 정책 전문가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드물게 정책 분야의 일가를 이룬 분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초선 국회의원이 딸이 읽고 있던 <결혼불능세대>를 보고, 김 소장과 저녁 식사 자리를 함께했다고 한다. 김대호 소장과 저녁을 먹은 그 국회의원은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김 소장과 비슷하게 세상을 보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 소장의 문제의식은 참여정부 노선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김 소장을 전폭 지원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그런 김 소장은 <안철수의 생각>을 어떻게 읽었을까? 기자로써 또 올해 대선을 앞둔 유권자로서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전화를 끊기도 전에 바로 대담을 승낙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다섯 번의 대담을 마쳤다.
 
안철수에 대한 담론 - 정치의 과잉, 정책의 빈곤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선 나도 공부를 해야 했다. 안철수를 다룬 책도 부지런히 찾아 읽었다. 대형 서점의 안철수 매대엔 이미 안철수 현상을 다룬 책이 빼곡히 쌓여가고 있었다. 안철수에 대한 책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안철수 자신이 썼거나 주변 인물이 정리한 안철수의 개인사를 다룬 책들이다. <무릎팍도사> 등을 통해서 잘 알려진 그의 스토리는 이미 신화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샐러리맨의 신화였다. 그의 개인사를 다룬 책들은 좋은 자기계발서일 수 있지만, 대통령 후보를 평가하는 좋은 잣대는 아니라고 봤다.

그 다음은 조갑제와 같은 보수 논객이 쓴 안철수 검증서들이다. 주로 안철수가 진보 진영과 어떤 유사성을 갖고 있는지 밝히려는 이념 검증이 목적이었다. 안철수의 좌익성, 종북성 등을 파헤쳐보겠다는 시도였다. 인신공격과 검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이런 책들도 필요는 하겠지만, 매력적이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현상을 진지하게 고찰한 책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 대표 논객이라 할 수 있는 강준만 교수의 <안철수의 힘>이다. 강준만 교수는 “2012년 시대 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라며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갈라져 극단적 싸움만 일삼은 정치권을 비판했다. 그리고 안철수가 그런 증오의 시대를 끝낼 정치적 대안이라며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한겨레의 성한용 기자 등 5명의 정치부 기자가 쓴 <안철수를 읽는다>도 참고가 됐다. 비슷한 대담집 형식이고, 오랜 시간 국회를 출입하며 쌓은 선배 기자들의 통찰력과 차분한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을 다룬 책일 뿐 안철수의 정책을 평가한 책은 아니었다.
 
과연 안철수는 유능할까?

이 책을 통해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은 안철수의 유능함이었다. 좁은 의미의 정치만 잘 해도 대통령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한대통령이 되려면 정책을 잘 해야 한다. 안철수에게도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유능함의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인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5년간 지켜봤다. 안철수에 대한 검증이 이 부분에 집중돼야하는 이유다.

첫 번째 저서인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이후 10여년 간 꾸준히 정책 분야에 천착해온 김대호 소장은 이런 안철수의 유능함을 검증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봤다. 아니나 다를까. 김 소장은 내가 <안철수의 생각>을 읽으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의 정책의 장점과 단점을 채로 걸러내듯이 찾아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김 소장의 혜안을 통해 안철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길 기대한다.
 
증오의 정치를 끝내기 위한 김대호 솔루션

덤으로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제시된 <안철수와 대한민국을 위한 중대제안>김대호 솔루션이라고 할만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를 통해 증오의 시대를 끝내자고 주장했다면, ‘김대호 솔루션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안철수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전제로 4년 중임제 개헌과 중대선거구로의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것이 김대호 솔루션의 요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추진했지만 실패로 끝난 이른바 원포인트개헌과 선거법 개정을 안철수 대통령을 통해 이뤄보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 안철수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와 국회 차원의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선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치루자는 내용이다. 중간선거가 필요하다면 미국처럼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조정하거나 상하 양원을 설치하는 방안도 담을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양당제의 기득권이 약화된다면 우리도 집권한 상대방이 실패하기만을 기다리는양당제 특유의 증오의 정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잡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다당제 속에서 다수파가 연정을 구성하고 타협과 설득을 통해 국가적 사업을 이뤄가는 상생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처럼 당당하게 안철수 대통령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과 함께 이 문제를 놓고 큰 토론을 벌여야 한다. 헌법재판소와 이명박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시가 지켜지듯이 선거에서 국민의 승인을 받은 공약이어야 집권 이후에도 결실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선거 때 토론한 만큼 발전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을 기다리며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모두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건국의 아버지, 산업화의 역군, 민주화의 영웅들, 지역주의에 맞선 순교자, 샐러리맨의 신화. 개천에서 용 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 퇴임할 때는 실패한 대통령 취급을 받았다. “이게 다 000 때문이다라는 대통령 놀리기가 국민 오락거리가 됐다.

이건 역대 대통령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 역시 이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김대호 솔루션은 그런 시스템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 적기다.

더불어 <안철수의 생각>에 드러난 안철수의 정책을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민주화를 넘어 양극화를 향한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 생전에 나라 망하는 꼴을 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정말 중요하다. 이런 시기에 안철수라는 인물이 나타난 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일 수도 있겠다. 그 국운을 잘 살리느냐 못살리느냐는 물론 유권자인 국민들의 몫이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유권자 해먹기 어려운 나라. 이 책이 그런 유권자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