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분에 27권씩 팔렸다는 그 책을 샀다. 책이 나온 다음날 광화문 교보문고에서였다. 대선주자들의 책을 모아놓은 매대 위에 그 책이 없어서 서성이고 있는데, 한 사람이 불쑥 <안철수의 생각>을 올려놨다.
"방금 전까지 이 만큼 쌓여있었는데 다 어디 갔죠?"
잠깐 들고가서 보는 사이에 매대 위의 책이 품절됐던 것이다. 어쨌든 덕분에 '초판 2쇄'를 손에 넣은 나는 남들보다 하루 이틀 먼저 그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사흘만에 독파한 <안철수의 생각>은 마치 '다크나이트 라이즈' 같았다. 전작 '다크나이트'가 높여놓은 기대감 때문일까? 시리즈의 완결판은 꽤 잘만든 블록버스터임에도 실망감이 앞섰다.
그 책도 그랬다. 한국 사회의 모순 부조리를 치유할 V3 백신이 담겨있길 기대했기 때문인지, 내용 자체는 기대에 못미쳤다. 복지와 정의, 평화의 가치를 내세우고, 자살률과 출산률로 한국 사회의 위기를 진단했지만, 어디선가 다 들어본 이야기 같았다.
안철수는 올해로 만 50세다. 그가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고 싶다면 먼저 정치를 할 것을 권하고 싶었다. 초선 국회의원이든 일개 부처의 장관이든 국정운영 경험과 경륜을 쌓아주길 바랬다. 대한민국 18대 대통령은 아직 그에게 버거워 보였다.
<안철수의 생각> 이후의 반응
하지만 <안철수의 생각>이 출간되고 안철수의 지지율은 오히려 치솟았다. 한때 양자 대결 뿐 아니라 야권주자를 포함한 다자 대결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안철수 대통령의 등장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렇다면 내가 <안철수의 생각>을 잘못 읽은 것일까? 그저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들의 짜깁기 정도로 판단했던 것은 책 좀 읽었다는 기자의 오만이었을까? 국민들은 그 책과 안철수에게서 어떤 희망을 보고 있는 것일까?
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있던 차에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안철수의 생각>을 집중 해부하는 대담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김 소장님(이하 존칭 생략)과는 <결혼불능세대>라는 대담집을 함께 출간하며 한 차례 정책 대담을 진행해본 사이였다.
전작인 <결혼불능세대>에서도 밝혔지만, 김 소장은 진보 진영에서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책 전문가이자 ‘왕따’ 논객이다. 정치 전문가만 넘쳐나고 정책 전문가가 별로 없는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드물게 정책 분야의 일가를 이룬 분이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초선 국회의원이 딸이 읽고 있던 <결혼불능세대>를 보고, 김 소장과 저녁 식사 자리를 함께했다고 한다. 김대호 소장과 저녁을 먹은 그 국회의원은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살아계셨다면 김 소장과 비슷하게 세상을 보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김 소장의 문제의식은 참여정부 노선의 업그레이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장을 맡으며 김 소장을 전폭 지원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인 듯하다.
그런 김 소장은 <안철수의 생각>을 어떻게 읽었을까? 기자로써 또 올해 대선을 앞둔 유권자로서 꼭 한번 들어보고 싶었다. 전화를 끊기도 전에 바로 대담을 승낙했다. 그리고 일사천리로 다섯 번의 대담을 마쳤다.
안철수에 대한 담론 - 정치의 과잉, 정책의 빈곤
좋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선 나도 공부를 해야 했다. 안철수를 다룬 책도 부지런히 찾아 읽었다. 대형 서점의 안철수 매대엔 이미 안철수 현상을 다룬 책이 빼곡히 쌓여가고 있었다. 안철수에 대한 책은 크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었다.
먼저 안철수 자신이 썼거나 주변 인물이 정리한 안철수의 개인사를 다룬 책들이다. <무릎팍도사> 등을 통해서 잘 알려진 그의 스토리는 이미 신화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샐러리맨의 신화’였다. 그의 개인사를 다룬 책들은 좋은 자기계발서일 수 있지만, 대통령 후보를 평가하는 좋은 잣대는 아니라고 봤다.
그 다음은 조갑제와 같은 보수 논객이 쓴 안철수 검증서들이다. 주로 안철수가 진보 진영과 어떤 유사성을 갖고 있는지 밝히려는 이념 검증이 목적이었다. 안철수의 좌익성, 종북성 등을 파헤쳐보겠다는 시도였다. 인신공격과 검증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이런 책들도 필요는 하겠지만, 매력적이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안철수 현상을 진지하게 고찰한 책들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우리나라 대표 논객이라 할 수 있는 강준만 교수의 <안철수의 힘>이다. 강준만 교수는 “2012년 시대 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라며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갈라져 극단적 싸움만 일삼은 정치권을 비판했다. 그리고 안철수가 그런 증오의 시대를 끝낼 정치적 대안이라며 공식 지지를 선언했다.
한겨레의 성한용 기자 등 5명의 정치부 기자가 쓴 <안철수를 읽는다>도 참고가 됐다. 비슷한 대담집 형식이고, 오랜 시간 국회를 출입하며 쌓은 선배 기자들의 통찰력과 차분한 분석이 돋보이는 책이었다. 하지만 안철수 현상을 다룬 책일 뿐 안철수의 정책을 평가한 책은 아니었다.
과연 안철수는 유능할까?
이 책을 통해 꼭 묻고 싶었던 질문은 안철수의 유능함이었다. 좁은 의미의 ‘정치’만 잘 해도 대통령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정책을 잘 해야 한다. 안철수에게도 이명박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유능함’의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인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5년간 지켜봤다. 안철수에 대한 검증이 이 부분에 집중돼야하는 이유다.
첫 번째 저서인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이후 10여년 간 꾸준히 정책 분야에 천착해온 김대호 소장은 이런 안철수의 유능함을 검증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봤다. 아니나 다를까. 김 소장은 내가 <안철수의 생각>을 읽으며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그의 정책의 장점과 단점을 채로 걸러내듯이 찾아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김 소장의 혜안을 통해 안철수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길 기대한다.
‘증오의 정치’를 끝내기 위한 김대호 솔루션
덤으로 이 책의 결론 부분에서 제시된 <안철수와 대한민국을 위한 중대제안>은 ‘김대호 솔루션’이라고 할만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다. 강준만 교수가 안철수를 통해 “증오의 시대를 끝내자”고 주장했다면, ‘김대호 솔루션’은 그것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안철수 대통령의 임기 단축을 전제로 4년 중임제 개헌과 중대선거구로의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것이 ‘김대호 솔루션’의 요체다.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 추진했지만 실패로 끝난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과 선거법 개정을 안철수 대통령을 통해 이뤄보자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 안철수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거국내각을 구성하고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와 국회 차원의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대선은 2016년 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치루자는 내용이다. 중간선거가 필요하다면 미국처럼 국회의원 임기를 2년으로 조정하거나 상하 양원을 설치하는 방안도 담을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양당제의 기득권이 약화된다면 우리도 “집권한 상대방이 실패하기만을 기다리는” 양당제 특유의 증오의 정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복잡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다당제 속에서 다수파가 연정을 구성하고 타협과 설득을 통해 국가적 사업을 이뤄가는 상생의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처럼 당당하게 안철수 대통령의 핵심 공약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민과 함께 이 문제를 놓고 큰 토론을 벌여야 한다. 헌법재판소와 이명박 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종시가 지켜지듯이 선거에서 국민의 승인을 받은 공약이어야 집권 이후에도 결실을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은 선거 때 토론한 만큼 발전한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을 기다리며
대한민국 대통령들은 모두 신화의 주인공들이다. 건국의 아버지, 산업화의 역군, 민주화의 영웅들, 지역주의에 맞선 순교자, 샐러리맨의 신화. 개천에서 용 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 퇴임할 때는 실패한 대통령 취급을 받았다. “이게 다 000 때문이다”라는 대통령 놀리기가 국민 오락거리가 됐다.
이건 역대 대통령들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다. 안철수가 대통령이 된다면 그 역시 이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김대호 솔루션’은 그런 시스템을 바꾸자는 제안이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 적기다.
더불어 <안철수의 생각>에 드러난 안철수의 정책을 보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중요하다. 경제민주화를 넘어 양극화를 향한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 미래는 없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 생전에 나라 망하는 꼴을 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대선은 정말 중요하다. 이런 시기에 안철수라는 인물이 나타난 것은 대한민국의 국운일 수도 있겠다. 그 국운을 잘 살리느냐 못살리느냐는 물론 유권자인 국민들의 몫이다. 대한민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유권자 해먹기 어려운 나라”다. 이 책이 그런 유권자들에게 작은 참고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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