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25일 토요일

[MH 칼럼] 상실의 시대 ① :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모두가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詩人 이성복의 , “그날중에서)
 
시인의 눈에는 모두가 병들어있지만, 아무도 아프지 않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더 큰 부조리함이 존재한다. 병이 들었다면 마땅히 아파해야하고나아가 병을 치유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은 더욱 깊어져서 마침내 우리를 파괴시키고 말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스스로를 쇠파리에 비유했다. 그가 살던 시기, 아테네는 과거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소피스트들이 정치를 타락시켰고, 시민들은 공적인 미덕을 상실해갔으며, 정의는 고려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번영의 상징이었던 아테네는 마치 영원한 잠에 빠지려는 황소와 같았다. 그런 가운데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광장에 나가서 정의가 무엇인지를 동료시민들에게 질문하고, 현학적인 논변을 펼치는 소피스트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쇠파리가 소를 귀찮게 굴어서 잠에 들지 못하게 하듯이, 소크라테스는 동료 시민들에게 귀찮을 정도로 논전을 펼치고 다녔다. 그 귀찮음에 지친 아테네 시민들은 배심원 평결로서 소크라테스에게 사약을 내렸다. 하지만 그들이 후회를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훌륭한 자를 부당하게 죽였다는 반성이 시민들에게 되돌아왔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아테네 시민들을 반성하고 성찰하게 하려했던 그의 마지막 정치적 실천이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타락한 아테네에서 진리와 정의를 되물었으며, 이성복 시인은 무언가 중요한 것이 상실 되어버린 시대에서 병들었으나 아프지 않는부조리한 세태를 지적했다. , 병들었으나 아프지 않았을까? 타인의 상처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된 삶을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복의 <그날>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비를 통해서 공감능력이 상실된 삶이 얼마나 냉소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날 어머니의 낡은 다리는 퉁퉁 부어올랐고 / 나는 신문사로 가서 하루 종일 노닥거렸다.” 
그 날 아버지는 미수금 회수 관계로 사장과 다투었고 / 여동생은 애인과 함께 음악회에 갔다.”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흉악범죄가 일어나는 것이 비단 형벌이 준엄하지 못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배움의 전당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과 집단괴롭힘의 문제는 우리사회의 과열된 경쟁, 그리고 뒤쳐진 이들에 대한 배제의 분위기와 과연 무관한 일일까?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단편적으로 제시되고 사라지는 근시안적인 대책이 아니라, 우리사회에서 상실되고 있는 중요한 가치들 - 예컨대 자유와 평등과 시민들의 동료의식 - 에 대한 근본적인 토의와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글은 앞으로 이어질 두 편의 글의 序言이다.
 

* 상실의 시대 : 중산층의 몰락과 <최저임금제도>의 재조명
* 상실의 시대 : 희망과 미래, 예측가능성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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