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전’이 상실된 사회에 살고 있는게 아닐까? 언제부턴가, 청년들에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을 조언하는 것이 굉장히 현실-착오적이고 어리석은 행동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단 한 번의 실패가 영원한 나락으로 빠지는 사회에서 ‘도전’이란 그저 사치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지난 15년간 우리 사회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자리잡고 있는 감정은 아마도 ‘몰락의 두려움’ 이었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제위기로 인해 발생한 실업은 건실한 중산층 가정을 순식간에 사회 하층민으로 몰락시켰다.
운이 좋게도 몰락의 대열에서 열외 된 이들은 자신도 언제 몰락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일종의 생존본능과도 같아서, 쉽사리 ‘정규직 노동자의 기득권’과 같은 단어로 매도하기가 쉽지 않다. 그나마 괜찮은 직장에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개인들의 이기적인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몰락하는 자들에게 취약하고 다른 대안은 마땅히 존재하고 있지 않으며 다가올 미래가 어떻게 될지 예측하고 계획을 세워나가기엔 불확실성이 너무 커져버린 상태가 훨씬 더 큰 문제가 된다.
사회가 개인들에게 기본적인 복지서비스와 실패에 대한 안전망을 제공해주지 못하는 곳에서, 사람들은 모든 공적 미덕이 질식당한 협소한 개인주의 속으로 칩거해버린다.(A.토크빌, 『앙시앵 레짐과 프랑스 혁명』, p.7) 사회가 개인들을 ‘몰락의 두려움’으로부터 지켜주지 못하기 때문에, 개인들은 협소한 개인주의 속에서라도 스스로를 지키려 한다. 하지만 이것이 개인들에게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협소한 개인주의에 빠지는 것은 당연히 좋은 사회가 아닐 뿐더러, 협력과 연대를 통해 수행되어야 할 수많은 공적인 임무들이 정지하게 됨을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송호근·홍경준 교수는 『복지국가의 태동: 민주화, 세계화, 그리고 한국의 복지정치(2006)』에서 한국의 복지국가 건설의 가장 큰 난관 중에 하나는 중상층의 ‘연대와 공공성’의 상실에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관련된 내용을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부의 입장은 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중상층의 소득도 악화될 것이라는 공동체적 위기의식에 입각해 있는데, 중상층은 이 논리를 수용할 여유가 없는 것이 문제다.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장기간 지속되는 경기침체는 중상층의 심리적 관용의 수준을 낮췄고, 또 ‘분배의 평등’에 요구되는 부담증가가 경기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이론적 근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앞의 책, p.307)
한국의 <최저임금제도>도 이 문제와 복잡·미묘하게 얽혀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은 시급 4580원으로 맥도날드 빅맥버거 1.2개정도 살 수 있는 수준이다. 이른바, “최저임금의 빅맥지수”라고도 할 수 있는데, 미국의 경우는 최저임금이 7.15달러로 빅맥버거 2.2개를, 일본은 최저임금이 837엔으로 빅맥버거 2.6개를 살 수 있다. 여타 선진국에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나라의 현재 최저임금의 수준은 (빅맥버거 구매력 환산금액으로) 50%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최저임금제도> 주요한 취지 자체가 열심히 일을 하고도 가난에 허우적거리는 이른바 근로빈곤층(working poor)를 구제하는데 있는 만큼, 최저임금 수준으로도 열심히 일한다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수준으로의 최저임금 현실화(즉, 인상)가 필요한 실정이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되는 것처럼 쉬운 일인가? 그것에 반대하는 이들의 목소리에도 마땅히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우선, 간단한 질문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에 대하여 대기업이 더욱 반대를 할까, 아니면 영세 자영업자들이 더욱 반대를 할까? 정답은 당연히 영세 자영업자들이지 않을까? 왜냐하면 대기업은 이미 피고용인들에 대해서 최저임금 이상의 급여를 지불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에 영세 자영업자들은 임금 지불능력이 떨어지고, 이미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 수준 혹은 그 이하로 형성되어있는 임금수준에 의존하여 수지타산을 근근이 유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최저임금을 무턱대고 인상하는 것은 우리사회의 중산층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었던 영세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한국 경제와 사회에서 자영업자들이 자리하고 있는 정확한 위치이다. 한국의 취업자 분포는 상당히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는데, 전체 취업인구의 28.8%가 자영업자(2010년 기준)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이는 독일 11.6%, 미국 7.0%와 비교하여도 자영업자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괜찮을 일자리를 제공하던 대기업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있고, 실업으로 내몰린 중산층이 대거 자영업으로 배출되었다. 내몰리듯이 자영업으로 쏟아져 나온 이들은 편의점, 치킨, 피자 등과 같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업종으로 몰렸고, 이들 영세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여 최소한의 이윤을 겨우 창출하는 수준이다.
왜 그러한지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괜찮을 일자리를 제공하던 대기업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있고, 실업으로 내몰린 중산층이 대거 자영업으로 배출되었다. 내몰리듯이 자영업으로 쏟아져 나온 이들은 편의점, 치킨, 피자 등과 같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로 하지 않는 서비스업종으로 몰렸고, 이들 영세 자영업자들이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고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값싼 노동력에 의존하여 최소한의 이윤을 겨우 창출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의 낮은 경쟁력이 과연 자영업자 개개인들의 잘못일까? 그렇지 않다. 정부가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정책적 노력으로 이들을 자영업으로 유인한 측면이 있다.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신규창업을 위해 은행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대출을 알선하는 등의 정책을 펼쳐왔다. 자영업 시장의 과잉과 경쟁력 저하는 한편으로는 정부의 정책적 실패의 결과이기도 한 것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의 인상은 ① 최저임금으로 살아가는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으면서도, ② 영세 자영업자들의 몰락을 예방할 수 있는, 나아가 영세 자영업자들도 상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한 가지 정책적 아이디어를 제안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최저임금의 인상을 사업장 규모에 따라 차등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이다. 예컨대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에는 최저임금을 매년 10%씩(물가 인상률의 3배) 10년에 걸쳐서 인상토록 하여 구매력 환산으로 OECD 평균치(ex. 빅맥지수 2.0 정도로) 수준으로 이르게 하고, 5인 미만의 영세 자영업자들에 대해서는 그 인상률을 물가인상률의 1.5배 정도로 경감시켜서 점진적으로 인상시키는 방안이다. 그렇게 된다면, 단기적으로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대형 할인마트 등에 비해 인건비 측면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고(경쟁상대인 대형 기업형 슈퍼마켓의 인건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상승하기 때문에!), 이는 <상생법>이나 <유통법>, <대형 할인마트 주말 휴무제> 등을 통해 영세 자영업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정부의 정책과도 부합될 수 있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모든 고용분야에서의 최저임금 인상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청년유니온의 양호경 정책팀장은 “최저임금 인상문제도 결국에는 영세 자영업 사장님들이 피고용자들에게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수준을 지불할 수 있는 경제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정책목표와 함께 가야한다.”고 말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같이 사회 전반적인 재분배 강화와 양극화 완화, 국내경기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은 사회 구성원 다수의 연대의식과 자발적 협력을 얼마나 지혜롭고 설득력 있게 이끌어낼 수 있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 특정한 정책의 추진이 ‘지혜롭다’는 것은 그 정책으로 인해 사회 전반적인 공익이 자연스럽게 증대됨을 잘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책의 추진이 ‘설득력 있다’는 것은 정책수행에 필요한 비용의 부담을 최소한 모두가 공평하게, 나아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계층으로부터 좀 더 많은 기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됨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최저임금>의 현실화와 그 방법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건전한 토의를 통해서 정치적 지혜가 모아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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