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9월 12일 수요일

[MH 칼럼] 죽은 자의 책임과 산 자의 책임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관련 발언이 앞으로의 대선 정국에서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지, 혹은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채 조용히 묻혀버리고 말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과거에 대해 진지한 반성이 없이는 한 발짝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일본 극우파들의 반성없는 역사인식을 보라. 우리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뒤늦은 죄책감이 아니다. 잘못된 과거로부터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는 현재의 입장을 요구한다. 지나간 과거는 되돌릴 수 없겠지만, 적어도 다가올 미래의 비극은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 가라타니 고진은 <윤리21>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뭔가 새로운 지점에 도달할 때 우리는 과거를 다시 본다. 그것은 죽은 자와의 관계 변화라고 말해도 좋다. 그 경우 죽은 자는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변하는 것이다.” [11. 죽은 타자와 우리의 관계
 
20세기 초반,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저지른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의 주범들은 이미 모두 무덤 속으로 들어갔다. 지금 일본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과거의 만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죽은 이들의 잘못을 지금 산 자들에게 부당한 연좌죄의 형태로 부과하고 있는 것일까? 가라타니 고진의 입장에서 본다면, 선조들의 잘못을 후손들이 반성하고 사과해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가라타니 고진은 상당히 공감가는 설명을 제시한다. 위에서도 인용하였지만,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현재의 우리가 보다 올바른 길을 걷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과거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의 역사를 현재의 백인들이 반성하는 것이 아직 은연중에 잔존하는 오늘날의 인종차별적 행위들에 대한 일소의 의지를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죽은 자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변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그저 과거와 죽은 이들에게만 묻어둔 채 반성의 책임이 없음을 외치는 이들은 결국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책임은 잘못을 저지른 이후에 처벌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책임,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도 책임은 "지금 우리에게"도 분명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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